기후위기 시대, 시민의식은 유아기부터 시작된다
21세기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복잡한 환경문제와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손실, 자원 고갈, 미세먼지 등은 이제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일상에서 체험하는 현실로 다가온다. 과거에는 ‘시민의식’이라는 개념이 성인이 된 이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때나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환경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성인기에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아기부터 습관화된 관찰, 공감, 책임의 경험이 밑거름이 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이전,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규범과 환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놀이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법, 친구가 버린 쓰레기를 대신 줍는 행동, 물을 아껴 쓰는 생활 습관, 자연 속에서 생명을 관찰하며 존중하는 태도 등은 모두 시민의식의 초기 형태다. 따라서 초등 입학 전 환경교육은 지식 전달 차원을 넘어서, 시민성의 정서적·도덕적 기반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따라, 이후 사회적 책임감과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많은 교육 현장에서 유아기의 환경교육이 단편적 체험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시민의식과 연결된 구조적 목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초등 입학 전, 즉 만 3세~6세 시기의 환경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시민성을 자극하고 발달시키는지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아이는 단지 깨끗하게 정리하거나 식물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아기의 환경경험이 시민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
유아기는 뇌와 정서가 급격하게 발달하는 시기로, 이 시기에 형성된 가치관과 태도는 이후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환경에 대한 경험은 도덕성, 공감 능력, 공동체 인식 등 시민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생태심리학자들은 유아기의 자연 경험이 풍부한 아동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고, 도덕적 판단 능력이 빠르게 형성되며, 사회적 규칙을 내면화하는 속도도 빠르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유아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과정을 직접 참여하며 배울 때, 단순한 행동 습관을 넘어서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생긴다. 이는 규칙과 책임이라는 개념을 익히는 과정이며, 곧 시민성의 첫 걸음이다. 또한 텃밭을 가꾸며 기다림과 실패를 경험하고, 날씨에 따라 식물 상태가 변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아이는 자연의 순환성과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인식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감각적·정서적 학습은 아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를 변화시키며, 장기적으로는 환경 시민의 기초를 형성하게 만든다.
또한 유아기에는 놀이를 통해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친구들과 협상하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이 빈번하다. 이 과정에서 환경교육은 놀이와 결합할 때 더 큰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놀이’, ‘에너지 아끼기 챌린지’, ‘미세먼지 탐정단’ 등의 활동은 아이에게 규범과 실천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며, 자기 효능감과 책임감을 자극한다. 이런 놀이 기반 환경교육은 추상적인 개념보다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실천 중심의 시민 감수성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다.
초등 입학 전 환경교육의 방향성과 적용 사례
초등 입학 전 환경교육이 시민의식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성과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단순한 생태 체험을 넘어선 ‘환경 맥락 중심 교육’이 요구된다. 이는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지는 것뿐 아니라, 그 대상이 왜 중요한지, 나의 행동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결시키는 교육 방식이다. 이를 위해 유아교육기관은 활동마다 ‘환경적 이유’를 담아 설명하고, 행동과 결과 사이의 인과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해야 한다.
둘째,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아는 모방과 반복을 통해 학습하기 때문에, 어른이 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아이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정과 유치원에서 환경을 단지 ‘청결 유지’의 수단이 아닌 ‘공동체 가치 실현’의 실천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행위를 단지 정돈의 차원이 아니라 ‘함께 사는 공간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의 태도’로 설명해주는 방식이 그 예다.
셋째, 유아 환경교육의 내용은 연령에 따라 점진적으로 구성돼야 한다. 만 3세 전후 아이에게는 자연 관찰과 오감 자극 중심의 경험이 적합하고, 만 5~6세가 되면 간단한 인과관계, 책임 개념, 미래 결과에 대한 상상을 접목한 활동이 효과적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지역사회와 연결된 환경 행동 경험이 중요하다. 마을 청소에 참여하거나, 동네 텃밭 가꾸기, 자원순환센터 견학 등의 활동은 아이에게 ‘내가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주체 의식을 심어준다.
국내외에서 실제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의 숲 유치원에서는 자연 속에서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활동이 시민 교육의 기반으로 작동한다. 한국의 일부 생태유치원에서는 어린이 환경의회, 쓰레기 감시단, 물 아껴쓰기 캠페인 등 아이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보는 체험을 운영 중이다. 이런 사례들은 환경교육이 단지 정보전달이 아닌, 역할 수행 기반의 ‘작은 시민 경험’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아기 환경교육은 미래 시민사회의 핵심 인프라
기후위기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전환은 성인의 기술적 선택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감수성과 시민적 태도를 내면화한 세대가 자라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 입학 전, 즉 유아기의 환경교육은 단순한 발달지원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지탱할 시민의식의 기초 인프라로 여겨져야 한다. 그리고 이 교육은 단기 체험형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성과 맥락을 갖춘 생활 기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유아 환경교육은 현재 대부분의 공교육 과정에서 선택적 활동에 머물러 있으며, 보육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환경교육을 ‘정리정돈’이나 ‘자연 관찰’ 정도로 축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를 넘어, 시민교육으로서의 환경교육을 유아기 교육과정의 필수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하며, 교사 양성과정 및 부모교육 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인식 전환이 동반돼야 한다.
가정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는 방식으로 환경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끌어올려야 한다. “왜 나뭇잎이 떨어질까?”, “전기 아껴 쓰면 뭐가 달라질까?”, “이 음식물은 어디로 갈까?” 같은 질문은 아이에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 세상과 연결되는 시민 감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결국 초등 입학 전 환경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훈련이며, 어린 시민으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실천적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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