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전환과 아동 권리 사이의 간극
전 세계 도시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인 기후전환을 시작하고 있다. 에너지 고효율 건축물 확대, 차량 통행량 감축, 친환경 교통수단 전환, 녹색 인프라 확대 등의 정책은 미래지향적이고 필수적인 조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환 과정이 항상 모든 시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도시 공간에서 ‘아동의 삶’을 중심에 두지 않은 저탄소 정책은 아이들의 안전, 이동권, 휴식권을 오히려 축소시킬 수 있다.
아동은 신체적으로 취약하며, 사회적 발언권과 정치적 대표성이 낮은 계층이다. 이로 인해 도시계획 단계에서 아동의 필요는 후순위로 밀리거나 표준 모델에서 누락되기 쉽다. 이는 저탄소 도시 정책이 친환경적이면서도 성인 중심의 구조로만 설계될 때, 아동의 권리와 경험을 제도적으로 배제하게 되는 근본적 한계를 낳는다.
도시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간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저탄소 도시’와 ‘아동 친화 도시’는 반드시 연결되어야 할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개념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 충돌하거나 무관심하게 병존하는 경우가 많다. 본 글은 왜 저탄소 도시가 아동 친화 도시가 되기 어려운지를 도시계획, 교통, 공공시설, 사회 인식 등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두 목표가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전환 방향을 제안한다.
녹색도시 인프라와 아동 이동권의 충돌
많은 도시가 차량 감축 정책을 통해 저탄소 도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파리, 런던 등은 도심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자전거 전용 도로 및 보행 친화 구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도시의 온실가스 감축에는 효과적이지만, 유모차를 끄는 보호자나 보행 아동에게는 동선 제약과 안전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행자 우선 정책으로 도로 폭이 좁아진 구간에서 유아용 보행기, 킥보드, 유모차, 동반인 보행이 동시에 이루어질 경우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가 차량 대신 주 이동 수단으로 확산되면서 어린이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교통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친환경 이동 수단의 확대가 아이들의 거리 체류 시간을 줄이고, 부모가 실내 공간으로 이동을 제한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도시 내 녹색 공간 확보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도시가 탄소흡수원 확대를 위해 공원, 생태숲, 텃밭을 조성하고 있으나, 이 공간들이 아동의 활동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무가 울창하지만 놀이기구나 안전매트가 없는 숲은 어린 아이들이 활용하기 어렵고, 미끄러운 흙길이나 울퉁불퉁한 산책로는 유모차 이동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녹색공간의 양적 확대가 곧 아동 친화 공간의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물리적 제약이 도시 전반에 확산될수록, 아동이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는 점이다. 저탄소 도시의 핵심이 ‘활동 축소’와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질 때, 다양성과 자유를 필요로 하는 아동기의 욕구는 점점 배제되고 있다.
에너지 효율성과 공공시설 축소가 불러온 육아 불균형
저탄소 도시는 에너지 효율을 강조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이는 주택, 도로, 학교, 공공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건물 단열 기준 강화, 전력 사용 최적화, 냉·난방 제어 시스템 도입 등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보육시설이나 아동 이용 공공시설의 서비스 질 저하와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정책 하에서 일부 지자체는 공공시설 운영 시간을 단축하거나 냉난방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전력 사용량 감축이라는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고온이나 한파 시기 아동의 휴식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 키즈카페, 공공 실내 놀이터 등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쉼터이지만, 탄소 예산 제한 정책으로 운영이 중단되거나 위축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교통의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유아 보호자들이 겪는 불편함도 증가하고 있다. 전기버스 도입, 노선 통합, 승하차 구간 조정 등은 효율성과 감축 효과에는 도움이 되지만, 유모차를 동반한 부모가 이동할 수 있는 범위는 오히려 좁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일부 전기버스의 차량 구조는 유모차 고정 장치가 부족하며, 환승 간 시간 간격이 커져 보호자가 외출을 기피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도시의 에너지 구조 전환이 서비스 이용권 불균형을 만들어내며, 이로 인해 육아 부담은 개인화되고 계층화된다. 고소득 가정은 친환경 개인 차량이나 사설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나, 저소득 가정일수록 도시의 공공 인프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기후 정책으로 인한 간접 피해를 더 많이 받는다. 이러한 불균형은 저탄소 도시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기후정책의 사회적 정의와 아동 권리의 통합을 위한 대안
ㄹ저탄소 도시가 진정한 지속가능 도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후정의와 사회정의의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기후 정책은 대체로 성인 중심, 경제 중심, 효율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아동은 감정, 감각, 안전, 놀이 등 비경제적 가치를 기반으로 도시를 경험하며, 이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전환은 도시의 포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선, 탄소 감축 목표와 함께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한 ‘도시 환경 복지 지표’가 병행되어야 한다. 녹지 확보율, 에너지 감축량뿐 아니라, 아동이 실제로 머물 수 있는 공공공간의 질, 실내외 쉼터의 개방 시간, 이동 안전성 지수 등도 포함된 새로운 지표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통계상의 아동 수나 시설 수를 넘어서, 실제 삶의 질을 반영하는 도시 계획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아동과 보호자의 목소리가 도시 전환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육아 시민 참여 플랫폼’이나 ‘아동 친화 기후계획 협의체’ 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도시 설계와 기후 정책 회의에는 아동 관련 기관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으며, 부모 역시 시민이자 돌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통로가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아동 친화 도시와 저탄소 도시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기 위해서는, 기후 정책 그 자체가 아동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는 지금 이 도시의 시민이며, 단지 미래의 존재가 아니다. 저탄소 도시는 아이가 더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기,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 더 평등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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