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환경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는 어떤 환경 구조를 갖춰야 하는가?

beautifulsesang 2025. 7. 5. 17:07

도시의 구조가 육아의 질을 결정한다

현대 도시에서 육아는 점점 더 ‘개별 가정의 고립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주거지의 안전성, 보육시설의 접근성, 공공공간의 질, 교통 시스템, 녹지 공간의 유무 등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인프라 구조가 육아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조부모의 양육 지원이 없는 경우, 지역 사회와 도시 환경은 사실상 ‘공동 양육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많은 도시가 육아 친화적인 도시 구조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도시계획은 여전히 생산성과 교통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아이와 부모의 동선을 고려한 공간 배치는 매우 미흡하다. 많은 부모들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고 말하며 이주를 고려하거나 출산을 미루는 현상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삶의 공간이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의 결과다. 육아는 집 안에서만 이뤄지는 활동이 아니며, 도시 공간 전체가 아이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란 어떤 환경 구조를 갖춰야 할까? 그 조건은 물리적 인프라와 사회적 시스템을 포함한 종합적인 설계로 설명될 수 있다.

 

육아하기 좋은 도시는 어떤 환경 구조를 갖춰야 하는가?

 

 

아이 중심 도시 환경의 필수 요소: 공간, 안전, 건강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를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는 공간의 질과 접근성이다. 도보 10분 거리 이내에 안전하게 접근 가능한 놀이 공간이 존재하는가, 유모차로 이동 가능한 보행로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가,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녹지공간이 있는가 등의 기준은 부모의 생활 만족도뿐 아니라 아이의 건강과 발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유아기 아이들은 대형 놀이터보다는 잦은 빈도로 이용할 수 있는 소규모 놀이 공간을 필요로 하며, 이 공간은 단순한 ‘기구 중심’이 아닌, 자연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둘째로 중요한 요소는 도시의 안전성이다. 육아 친화 도시에서는 교통 속도 제한, 어린이 보호구역 확대, 차 없는 거리, 횡단보도 조명 강화 등 세밀한 도시 설계가 필요하다. 아이는 순간적인 행동 변화가 많고 주변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는 사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또한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CCTV 설치, 골목길 조명, 공공화장실 위치 등의 세부적 설계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안심하고 이동하고 머물 수 있는 도시 공간이야말로 육아 친화 도시의 기본이다.

셋째로는 건강한 생활 환경이 필수적이다. 도심의 대기질, 실내 공기질, 주거지의 환기 구조, 인근 산업시설의 오염물질 배출 등은 아이의 면역 체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미세먼지, 오존, 라돈, 곰팡이 등의 실내외 오염물질은 유아기 호흡기 질환과 피부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도시 내에는 녹지뿐 아니라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식생 기반 인프라, 공기 순환을 고려한 도시 조성과 같은 환경 설계가 동반되어야 한다. 아이의 건강은 단지 병원 이용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환경 자체가 치료와 예방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육아 시스템과 도시 기반시설의 통합 설계 필요성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에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기반 시스템과 서비스 인프라가 결합돼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보육시설 접근성과 질적 수준, 병원과 응급의료체계, 공공도서관 및 육아지원센터의 위치와 운영방식 등이 있다. 특히 대기질이 나쁜 날,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공 실내 대체 공간’이 존재하는 도시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처럼 기후 조건이나 긴급 상황에 대비한 대체 공간 계획은 육아 친화 도시에서 필수적이다.

또한, 주거지 중심의 커뮤니티 기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동 육아 커뮤니티, 부모 교육 프로그램, 육아 정보 교류 플랫폼 등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서 사회적 연결과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고립된 육아는 부모의 우울감, 스트레스, 분노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아동의 정서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는 공간 설계뿐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 구축을 통해 가족의 정서적 안전망까지 고려해야 한다.

육아지원 정책 역시 도시계획과 통합되어야 한다. 지자체마다 육아 정책은 있지만, 도시 설계와 연계된 경우는 드물다. 보육 인프라 확충, 공공기관 내 어린이 공간 확보, 교통 약자를 고려한 도시 교통 정책 등은 물리적 공간계획과 복지정책이 통합되어야 가능한 과제다. 도시 행정이 육아를 ‘복지 부서의 영역’으로만 분리하지 않고, 도시 전반의 운영 원칙으로 흡수해야 한다. 아이 한 명의 삶이 도시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지향적 육아 친화 도시를 위한 정책 방향

 

기후위기, 저출산,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는 사회에서 육아 친화 도시는 단순한 출산 장려 정책을 넘어서 미래 도시의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육아가 불가능한 공간을 제공하는 도시는 아이의 삶과 가족의 삶 모두를 소진시킨다. 따라서 미래지향적 육아 친화 도시란, ‘어떻게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아동 중심 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규 아파트 단지 조성 시 놀이공간과 보행 환경에 대한 아동영향평가를 필수로 하고, 민간 개발 프로젝트에도 아동 공간 확보 비율을 명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기후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도시형 육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폭염 대응 그늘막 놀이터, 실내 대기질을 고려한 유아 도서관, 미세먼지 저감형 아파트 단지 등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정책 대상이다.

셋째, 아이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도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부모와 아동을 도시계획 과정에 적극 참여시키고, 아동 시민위원회나 부모 자문단과 같은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도시를 설계하고, 부모의 경험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아이 중심 도시가 현실화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환경적 권리의 보장이 필요하다. 도시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연과 멀어지고, 소음과 미세먼지에 익숙해지며, 뛰어놀 곳조차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도시 전체가 아이의 권리를 보호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