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환경

환경이 불평등한 시대, 아이에게 공평한 성장 기회는 가능한가?

beautifulsesang 2025. 7. 4. 16:18

성장 환경의 격차는 출발선에서 이미 존재한다

‘모든 아이는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태어난 지역, 부모의 소득, 주거환경, 교육 접근성에 따라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극명하게 나뉜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의 불평등이 교육·건강·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깨끗한 물과 공기의 차이를 넘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기후조건, 실내 공기질, 주변 녹지 접근성 등 ‘보이지 않는 환경 자원’에 대한 접근권이 심각하게 불균형해지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아이의 신체 발달, 인지능력, 사회성까지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삶의 기회를 불공정하게 만든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은 친환경 공공놀이터, 숲유치원, 유기농 급식 시스템 등 환경 기반의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 반면, 산업단지 주변이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은 오염된 공기, 소음, 좁은 실내 공간, 외부 안전 문제로 인해 아이들의 활동 반경이 제한적이다.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먼지(PM2.5) 고농도 지역에서 자란 아동은 천식 및 아토피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1.8배 높게 나타났다. 아이가 어떤 공간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건강과 정서, 행동 패턴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구조’의 문제다. 모든 아이가 같은 시작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환경 정의의 관점에서 육아 정책과 사회 인프라를 재설계해야 한다.

 

환경 불평등 시대, 공평한 성장 기회는 가능한가?

 

보이지 않는 환경 자원이 아동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

 

아동 발달은 유전적 요인뿐 아니라 주변 환경의 질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성장기에 노출되는 공기, 소리, 빛, 온도, 공간의 질은 신경 발달과 행동 양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2021년 보고서에서 “어린 시절 공기질이 좋고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인지 기능, 정서적 안정, 면역력 측면에서 더 건강한 성장 경로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상관이 아니라, 환경 자원이 아이의 생리적 시스템에 직접 작용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내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질 좋은 환경 자원’은 모든 아이에게 동등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녹지율이 낮은 주거지역, 차량 통행이 많은 도심가, 공장 밀집지역의 인근 주택은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저소득 가정이 밀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지역의 아이들은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실내 미세먼지와 곰팡이에 더 쉽게 노출된다. 한편, 교육 자원 역시 환경 자원과 결합되어 있다. 자연 기반 놀이가 강조되는 유치원과 사설 숲 프로그램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권이다. 결과적으로 환경의 격차는 교육의 격차로 이어지고,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

게다가 기후위기의 심화는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폭염과 미세먼지는 에어컨, 공기청정기, 주기적인 환기 시스템과 같은 대응 장비의 존재 유무에 따라 체감이 다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는 기본적인 대응조차 어렵고, 부모가 야외활동을 꺼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신체 자극과 사회적 접촉 기회를 빼앗긴다. 결국 환경의 질과 안정성이 아동의 ‘잠재력 발현 가능성’을 좌우하는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환경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착되는 구조

 

환경의 불평등은 단순히 건강과 학습 능력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아이가 속한 계층의 재생산, 즉 사회적 불평등의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자연과 단절된 생활, 비좁은 실내, 과도한 소음에 노출된 아동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많고, 감정 조절 능력과 자기통제력의 발달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학교 생활, 또래 관계, 사회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소외된 아이들’이 되기 쉽다.

환경적 차이는 또 다른 형태의 배제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고급 유치원이나 놀이 프로그램은 자연 환경 접근성을 전제로 설계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아이는 참여 자체가 어렵다. 이런 교육 기회 차이는 입시 경쟁력, 자존감, 자율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성인이 된 후에도 노동시장 진입, 경제적 자립 등 삶의 중요한 단계에서 격차를 만든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2020년 보고서에서 “기후위기와 도시화가 결합하면서 아동의 지역 간 격차는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 내에서도 환경 기반 계층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환경부, 보건복지부, 교육부가 각기 따로 움직이며 통합적 아동환경 정책이 부재하다. 주거환경 개선, 녹지 확보, 실내 공기 질 향상, 야외 체험 교육 기회 보장 등은 모두 분절적으로만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운 고질적 문제를 남기며, 아이들의 삶에 다양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결국, 환경 불평등은 다음 세대의 사회적 불평등을 만드는 ‘토양’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공평한 성장을 위한 사회적·정책적 해법

 

아이들이 어디에 태어났든,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든 ‘기본적인 환경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환경 정의’ 개념을 아동 정책 전반에 통합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미세먼지 대응 수준이 아니라, 아동 중심의 주거 정책, 공공 공간 설계, 교육 커리큘럼 구성, 건강 관리 체계에 환경의 질 개념을 반영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예컨대, 취약지역 내 공공육아시설에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실내 공기 질 관리 시스템을 보조하는 등의 실질적 개입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지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공공 투자의 재배치다. 현재 녹지와 숲 체험 인프라는 수도권과 고소득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에 대한 균형 재조정 없이는 공평한 성장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녹지 복원 사업, 지역형 숲유치원 프로그램, 자연놀이 중심의 마을단위 공동체 조성이 필요하며, 이는 단지 환경 개선이 아닌 미래 세대의 역량 형성 기반을 조성하는 국가적 전략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가정 내 환경 질 개선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다. 실내 공기질 모니터링 시스템 보급, 에너지 효율 주택 지원, 친환경 육아용품 접근성 확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개별 가정의 부담을 줄이고, 아이에게 건강하고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육아를 환경과 분리된 영역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서, 육아를 곧 환경 정책의 일부로 통합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