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의 시대, ‘육아노동’은 고려되고 있는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는 에너지 시스템의 전면적 전환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목표 아래, 화석연료 기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전환, 전력 효율화, 스마트 그리드 도입, 저소비 고효율 가전 보급 등은 각국 정부의 우선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환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 구조 내 돌봄 영역, 특히 육아노동에 대한 영향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 구조는 곧 일상의 구조이며,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감정노동·시간노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육아노동은 그 자체로 에너지 소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전등, 냉난방, 가전제품, 조리기구, 전자기기 등은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에너지 사용 구조가 바뀔 경우, 육아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일상 역시 직접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데 정책은 대부분 에너지 소비를 ‘가구 단위의 수치’로 판단하며, 그 안에서 육아가 차지하는 정서적, 시간적, 물리적 노동의 양상은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 육아노동이 사각지대에 놓인 이유다.
이 글에서는 에너지 대전환이 육아노동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1) 전력 소비 구조 변화와 시간 관리 방식, (2) 재생에너지 보급과 가전 이용 가능성, (3) 에너지 빈곤이 돌봄 환경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 (4) 정책 설계의 젠더·계층 편향 등을 통해 에너지 정책과 육아노동의 교차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전력 사용 패턴의 변화와 육아 시간 구조의 재편
육아노동은 24시간 내내 전개되는 비가시적 노동이다. 아기의 수면과 수유 주기를 맞추기 위한 새벽 시간의 조명 사용, 이유식 준비를 위한 전기레인지 가동, 유아의 목욕에 필요한 온수 사용 등은 시간대별로 전력 소비에 깊이 관여한다. 특히 영유아기를 담당하는 보호자는 하루 동안 여러 번의 전력 피크 구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따라서 에너지 사용 패턴을 ‘가구 평균’으로만 계산할 경우, 육아노동의 에너지 의존성은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대전환 이후, 일부 국가에서는 시간대별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거나, 전력 피크시간대 사용 제한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전력망 안정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조치이지만, 영유아 보호자의 일상에는 시간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구조적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온수기나 전기레인지 사용이 제한되는 시간대에 수유용 젖병을 소독하거나 이유식을 준비해야 하는 보호자는 시간과 노동을 이중으로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또한 가전제품 사용의 전환도 중요한 문제다. ‘고효율 에너지 가전’으로의 전환이 권장되고 있지만, 육아 가정은 빈번하게 세탁기, 공기청정기, 건조기, 음식보관 장치 등 다수의 에너지 고소비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신생아가 있는 가정에서는 하루 2~3회의 세탁은 기본이고, 낮잠 시간 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 기기를 지속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사용 조건은 ‘에너지 절약 권고’라는 기준만으로 통제되기 어렵다.
결국, 에너지 전환은 전력의 효율성이라는 기술적 지표만이 아니라, 시간과 돌봄 노동의 재조정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연결된다.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간 주권을 갖지 못하는 집단, 특히 육아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고려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에너지 빈곤과 돌봄 환경의 정서적 불평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는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초기 설치 비용과 기술 전환비용은 여전히 개별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접근성이 달라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은 노후된 난방 시스템, 단열이 부족한 주거 공간, 고효율 가전제품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에너지 빈곤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아이의 건강과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겨울철에 적절한 난방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영유아의 체온 유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냉방 부재로 인해 열사병, 탈수, 수면장애 등 건강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온도 변화가 극심한 환경은 아이의 정서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보호자는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정서적 소진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노동은 에너지 빈곤이라는 물리적 조건에서 파생된 심리적 불평등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육아 가정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일 경우, 생애 초기 돌봄 환경에 근본적인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태어난 시기, 부모의 소득 수준, 거주 환경에 따라 아이가 경험하는 온도, 빛, 공기, 청결의 질은 현저히 달라지며, 이 격차는 정서적 안정감, 수면의 질, 면역력 발달 등 장기적 건강 결과로 누적될 수 있다.
또한 공공시설 중심의 에너지 분산 정책이 강화될수록, 아이를 동반해 외부로 이동해야 하는 육아노동은 교통 인프라, 시간 구조, 안전성 등의 제약으로 인해 비효율성이 커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돌봄 노동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작용한다.
정책 설계의 젠더·계층 편향과 육아노동의 재정의 필요
에너지 전환 정책은 기술적 접근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으며, 정치·경제·공학 중심의 시각이 강하게 작동해왔다. 그 결과, 정책 수립 단계에서 비가시적 노동인 육아노동은 고려되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젠더 편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육아노동의 다수는 여성에 의해 수행되며, 전통적으로 ‘비공식 노동’으로 분류되어 온 돌봄 활동은 정책 설계자의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 정책이 주거 소유를 기준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임대주택 거주자나 이동이 잦은 저소득층 보호자는 고효율 시스템을 선택할 수 없는 구조에 놓인다. 육아노동이 가장 많이 집중되는 영아기~취학 전 연령대는 보호자가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거나, 비정규직·단시간 노동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은 시기이다. 이들은 에너지 절약 설비나 고효율 가전 전환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이며, 정책의 지원도 가장 적게 받는다.
이러한 구조는 에너지 정의(energy justice)의 관점에서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에너지 정의는 단지 공급의 공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너지 사용이 개인의 삶, 특히 돌봄과 생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려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에너지의 혜택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책은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지 않는 육아 가정’을 지적하기보다, 왜 그런 구조에 놓여 있는지를 분석하고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육아노동이 단순히 개인의 사적 책임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 설계의 핵심 축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 사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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