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환경

도심 고온현상과 유아 건강, 기후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beautifulsesang 2025. 7. 17. 20:09

점점 더 뜨거워지는 도시와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의 고온현상은 점점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심은 아스팔트, 콘크리트, 고층 건물, 밀집된 교통량 등으로 인해 기온이 주변 농촌이나 교외보다 2~7도 더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 현상은 ‘열섬현상(Urban Heat Island)’이라 불리며, 고온의 지속성과 야간 온도 상승으로 인해 휴식이나 회복이 어려워지면서 건강 위기를 가중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도시 고온현상이 가장 약한 존재인 유아와 영유아 가정에 거의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후복지 정책은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 기존 취약계층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유아기 아동은 그 우선순위에서 자주 제외되어 왔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 아이들은 체온 조절 능력이 미숙하고, 땀샘 발달이 완전하지 않으며, 탈수와 열사병에 훨씬 쉽게 노출된다. 이 글에서는 도심 고온현상이 유아의 건강에 미치는 구체적인 위협, 기후복지 정책의 사각지대 구조, 해외 및 국내 사례 분석, 그리고 향후 대응 방향을 분석한다.

 

고온 현상과 유아 건강, 기후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들

 

도심 고온이 유아 건강에 미치는 직접적·간접적 영향

 

도심 고온은 유아의 건강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체온 이상 상승에 따른 열사병, 탈수, 전해질 불균형, 호흡기 질환 악화 등이다. 영유아는 성인보다 체표면 면적 대비 체내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짧은 시간 외부에 노출되거나 실내 환기가 부족한 환경에서 빠르게 탈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특히 1세 이하의 영아는 스스로 갈증을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므로, 보호자의 인식이 없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온 환경은 수면에도 영향을 준다. 높은 야간 온도는 아이들의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깊은 수면 단계 진입을 방해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신체 회복력 저하, 면역력 감소, 신경계 발달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국내 한 대도시에서는 열대야가 연속 10일 이상 지속된 해에 영유아 병원 응급실 방문 건수가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는 통계도 존재한다. 간접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기온 상승은 대기 중 오존 농도를 높이며, 이는 유아의 기도 자극과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뿐만 아니라, 고온 환경은 부모의 육아 활동에도 제한을 준다. 외출 자체가 제한되면서 아이들은 실내 활동 위주로 고립되기 쉬우며, 이는 사회성 발달과 신체활동 저하로 연결된다. 또한 실내 냉방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전기요금 부담과 열 관련 질환 위험이 동시적으로 증가하는 이중 구조가 발생한다. 특히 노후주택이나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에어컨 사용이 어렵거나 제한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건강은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게 된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결과적으로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른 건강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기후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유아, 정책 부재의 현주소

 

한국의 기후복지 정책은 최근 몇 년 간 급격히 확대되고 있지만, 아동 특히 유아에 대한 명확한 보호정책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대표적인 폭염 대응 정책은 ‘무더위 쉼터’, ‘폭염경보 문자 발송’, ‘에너지 바우처 지원’ 등이지만, 이는 노인 또는 만성질환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 이러한 정책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 개인의 판단과 자발적 신청에 의존해야 하며, 그 절차조차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에너지 바우처 제도는 소득 기준 중심으로 운영되며, 아동 유무나 나이대는 지급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무더위 쉼터의 대부분은 노인복지관, 경로당 등에 위치해 있어 아이들이 활동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공간 구조를 가진다. 이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아동의 존재 자체가 정책적 고려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는 구조적 증거다. 한국의 기후적응계획서나 탄소중립 전략에도 아동은 ‘미래세대’로 언급될 뿐, 현재 보호받아야 할 실질적 정책 대상이 아니다.

해외의 경우, 일부 선진국은 아동 중심의 폭염 대응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치원 및 보육시설에 고온 경보 시스템과 자동 냉방 유지 지침을 마련했으며, 독일은 공공놀이터에 그늘막 설치 의무화와 고온시 물 분사 시스템 설치 기준을 도입했다. 일본 일부 지자체는 영유아 포함 가정에 여름철 냉방 보조금과 휴가지 보육소를 운영하는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기후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아동을 개별 가정의 책임이 아닌 사회가 함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유아 중심 기후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대응 전략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적응 정책’과 ‘사회복지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하며, 그 중심에 유아와 영유아 가정을 포함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폭염 대응 정책에 유아 기준을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에너지 바우처 지급 기준에 아동 나이대 항목을 추가하고, 보육시설에 고온 대응 매뉴얼과 냉방 장비 지원을 의무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무더위 쉼터에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구성하거나, 지역 도서관·체육센터·어린이집 등 아동 친화적 공간을 폭염 대피소로 지정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둘째, 도시계획 단계부터 유아의 기후 안전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도시 열섬 완화를 위한 도시 녹지 확대, 고반사 포장재 도입, 공공놀이터 그늘막 의무화, 미스트 시스템 설치 등은 유아의 외부 활동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는 환경정책이자 동시에 아동복지정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유아 보건자료와 기후 데이터의 연계 분석을 통해 고위험 지역을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 대응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의료기관과 협력해 폭염으로 인한 영유아 응급실 내원 데이터를 지역별로 분석하고, 해당 지역에는 추가적인 냉방 지원, 예방 교육, 보건소 방문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후복지를 세분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수적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만이 유아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아이의 생존과 안전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후복지적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아는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만큼 사회와 정책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존재다. 도심의 온도는 오를 수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보호막은 냉정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