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육아가 ‘정치적 선택’이 되는 현실에 관하여
자연스럽지 않은 육아, 생태적 선택은 누구의 몫인가
아이를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에 가깝다. 부모는 대체로 자녀가 햇빛을 받고 흙을 만지고 나무를 가까이하며 자라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도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이러한 자연 기반 육아를 점점 더 어렵고, 더 비용이 많이 드는 일로 만들어 왔다. 생태 육아가 일종의 ‘희망사항’이 아닌 ‘계획적 선택’이 되었고, 이제는 어떤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환경 친화적인 육아를 실천할 수 있는지가 계급과 정치, 도시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미세먼지 경보가 울릴 때, 한 아이는 정원 있는 전원주택에서 공기청정기를 켜며 놀 수 있지만, 다른 아이는 좁은 도시 빌라에서 창문조차 열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게 된다. ‘환경 육아’라는 용어는 점차 개인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자원 분배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 속에서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지는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 맥락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환경 육아가 어떻게 특정 계층에게만 실현 가능한 선택이 되고 있으며, 왜 이 문제가 단지 부모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1) 생태 육아가 처한 도시 구조의 한계, (2) 계급에 따라 분화되는 육아 접근성, (3) 육아를 둘러싼 정치적 인식 구조, (4) 대안적 정책 방향을 통해 환경과 육아가 동시에 평등한 권리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을 모색한다.
도시는 아이에게 친절한가? 생태 육아를 가로막는 구조
도시에서 환경 친화적인 육아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아를 위한 녹지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거나, 놀이터조차 고온의 아스팔트와 대기 오염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아이의 안전한 야외활동을 위한 기반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 보육시설조차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를 넘겨도 환기를 못 하거나, 노후 시설로 인해 내부 공기질이 열악한 상태로 방치되기도 한다.
아이를 위한 숲 교육, 텃밭 체험, 자연 놀이 프로그램 등은 존재하지만, 그 대부분은 사설 기관에 의해 유료로 제공되고 있다. 즉, 자연과 접촉하며 자라는 권리는 공공성이 보장되지 않고 시장화된 서비스로 변질된 셈이다. 도시 구조 자체가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공원이나 유아용 생태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 환경 육아는 도시에 사는 부모에게 매우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여기서부터 이미 환경 육아는 ‘누가 실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환경 육아의 또 다른 구조적 장벽은 시간의 비대칭성이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자연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동 시간, 체험 시간, 사전 준비가 필요하며 이는 곧 시간 자본을 가진 부모에게만 가능한 일이 된다. 맞벌이, 비정규직, 돌봄 지원이 부족한 가정은 아이를 숲에 데려갈 여유조차 갖기 어렵고, 결국 실내 보육이나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게 되는 비환경적 양육 루틴이 강제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좋은 부모’는 정치적 위치에서 만들어진다
생태적 육아를 실천하는 부모는 종종 ‘의식 있는 부모’, ‘아이 중심적 태도’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때때로 계급적 배경을 가리는 착시를 제공한다. 고소득층 부모는 상대적으로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 거주할 수 있으며, 건강한 식재료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정보 접근성, 구매력, 시간 여유 모두를 갖추고 있다. 반면 저소득층 부모는 정보 격차뿐 아니라, 실천에 필요한 자원 격차에서도 배제된다. 따라서 ‘환경 육아’는 종종 중산층 이상 부모의 상징 자본으로 기능하며, 이는 다시 ‘좋은 부모’라는 도덕적 타이틀과 연결된다.
이런 구조에서 사회는 육아의 질적 차이를 개인의 노력과 선택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즉, 환경적 양육을 실천하지 못한 부모는 ‘무관심한 부모’나 ‘게으른 부모’로 오해받기 쉬운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환경 육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사회적으로 매우 불균형하게 배분되어 있다. 예컨대 고효율 공기청정기, 유기농 이유식, 천연소재 장난감, 비건 아동 식단 등은 모두 경제적 지출과 정보력,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요소들이다.
결국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조건은 정치적 자원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환경 육아는 더 나은 양육을 실현하기 위한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계층 간 돌봄 구조의 정치적 양극화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환경 육아가 실현 가능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는 아이의 건강, 발달, 생애 기회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기후위기의 불평등한 대물림을 강화하는 핵심 고리가 된다.
환경 육아의 평등을 위한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환경 육아를 개인의 선택이나 윤리적 실천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실질적인 기후위기 시대의 육아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실행되거나 포기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환경 육아’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서 공공 정책의 대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가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 건강한 먹거리와 적정한 공기질을 누릴 권리, 기후위기에 대한 생태적 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은 모든 아이에게 보장되어야 할 생애 초기 기본권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도시계획 차원에서 유아 대상 생태 공간의 확보와 분산적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저소득 가정에도 접근 가능한 공공 기반의 친환경 보육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며, 고비용 환경 육아 콘텐츠는 공공 프로그램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부모를 위한 생태 육아 교육도 무료 혹은 지역 기반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그 정보가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차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태적 육아 실천이 부모 개인의 도덕적 무게로 전가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육아 환경을 바꾸기 위한 공동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아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이 정책적 우선순위에 포함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경 육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가 지켜야 할 양육의 기준이자 권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