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기 힘든 도시’의 기후 환경적 기준은 무엇인가?
도시가 육아를 거부하는 공간이 되는 순간
현대 도시에서 육아는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의 심화와 도시환경의 열악화는 이제 부모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주택의 열 취약성, 고온 통학로, 부족한 녹지, 실내 미세먼지, 에너지 빈곤, 공공시설의 열악한 냉방 설비 등은 모두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절한 도시’의 환경 조건으로 작용한다. 육아가 어려운 도시란 단순히 교육비나 주거비가 비싼 곳이 아니라, 아이의 생리적·정서적 발달을 위협하는 기후 환경적 요인이 누적된 공간을 의미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도시정책이 여전히 산업과 교통, 경제 효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아이들의 신체 조건과 건강 취약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후위기 속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구체적인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 만족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이 글에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든 도시’의 기후 환경적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그 조건들이 실제로 아이들의 건강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 설계적 접근과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기후환경적 측면에서 ‘육아 불가능 도시’의 조건
‘아이를 키우기 힘든 도시’를 기후 환경적 기준에서 진단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는 여름철 고온 노출도이다. 도심의 열섬현상은 아동의 체온 조절 기능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며, 고온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열탈진, 탈수, 호흡기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도시 내 아스팔트 비중이 높고, 그늘막이 부족하며, 보행 중 휴식 공간이 거의 없는 곳은 영유아와 보호자 모두에게 생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이 된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지면에 가까운 높이에 있기 때문에 지표 복사열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며, 이는 외부 활동을 제약시키고 정서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기준은 공공 보육시설 및 놀이공간의 기후 대응력 부족이다. 여름철 에어컨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어린이집, 햇빛을 막을 수 있는 그늘막이나 냉방 장비가 없는 놀이터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아동의 건강을 해치는 구조로 작동한다. 이는 곧 도시 내 사회 인프라가 아이의 열적 안정성과 기후 적응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또한 실내 미세먼지 농도가 높고 환기 시스템이 부족한 공간 역시 아이의 폐 발달과 면역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장기적으로 아토피, 비염, 천식, 만성기관지염 등 아동기 질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세 번째 기준은 에너지 빈곤과 주거의 열취약성이다. 오래된 주택의 단열 구조, 고효율 냉방 기기의 부재, 높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냉방기기 제한 사용 등은 저소득층 가정에서 특히 심각하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닌 아동의 생존 환경이 위협받는 상황이며, 실제로 국내외 조사에 따르면 열대야와 폭염일수 증가 시 아동 응급실 내원율이 15~20%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운 여름 밤, 냉방 없이 뜨거운 방에서 자야 하는 아이는 일상적인 기후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이는 성장과 학습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현재 도시 설계에서 아동은 고려되고 있는가?
현행 도시계획이나 주거 정책에서 아동은 여전히 주변적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도시공간 설계 시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 동선과 상업적 효율성, 그리고 성인 노동자 중심의 이동 편의성이다. 이는 곧 아이의 보행권, 안전권, 열환경권, 놀이권을 배제한 도시 공간을 만들어내며, 그 결과 ‘아이를 키우기 불편한 도시’가 구조적으로 형성된다. 아이들은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보호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그만큼 도시 환경에 대한 의존도와 노출도가 성인보다 훨씬 높다.
놀이터 한 곳이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있고, 30도가 넘는 날에도 그늘 하나 없는 구조로 방치되어 있다면, 해당 지역은 이미 육아 거부 도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공립 어린이집의 상당수는 노후 건물에 입주해 있으며, 냉방 효율과 공기질 기준이 법적 최소 수준에만 맞춰져 있다. 또한 폭염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나 실질적 대피 공간이 마련된 곳은 극히 드물다. 이는 도시 자체가 아동의 기후권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기후 관련 정보 시스템조차도 아동을 주요 데이터 항목으로 삼지 않는다. 폭염 취약계층 데이터에 아동은 거의 반영되지 않으며, 건강취약성 평가에서도 아동을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보다 후순위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아동이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있으면 괜찮다’는 논리에 의해 보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아이를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기후환경 설계 기준 제안
도시는 더 이상 경제와 교통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질과 건강,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후 환경 기준이 도시설계의 핵심축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아동의 열환경권, 보행 안전권, 공공놀이권을 포함한 ‘아동 기후권’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놀이터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그늘막, 물 분사 시설, 냉방 쉼터가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며, 도보 10분 이내에 안전한 대피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어린이집 및 유아시설의 건물 구조에도 열 취약성 지표를 반영해 리모델링 우선 대상에 포함해야 하며, 냉방 효율, 환기 시스템, 공기청정기 성능 등에 대한 환경적 최소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설 보강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필수적인 아동 복지 인프라다.
셋째, 폭염 대응 정책에서 아동 중심 데이터 수집과 정책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보건소, 병원,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수집된 아동 건강 데이터를 지역 기온 변화와 연계 분석하고, 고온 민감지역에 유아 쉼터, 냉방비 지원, 외부활동 자제 권고 등 정밀 대응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아동 기후 영향 평가’를 별도로 도입하여 도시계획의 모든 단계에서 아동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넷째, 부모 개인에게만 아이 보호의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가 아이를 함께 키우고 보호하는 도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도시가 아니라, 아이의 생존과 발달을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도시가 진정한 지속가능 도시다. 기후위기 시대, 아이에게 적대적인 도시 구조는 그 자체로 실패한 도시정책의 결과다.
아이를 위한 도시가 곧 모두를 위한 도시이며, 기후적응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